본문 바로가기

이글루스

Digital Impression

검색페이지 이동

사이드 메뉴

이글루스 블로그 정보

어처구니 없는 팜의 실수 연발 - 팜의 역사에 관해서

앱으로 보기

본문 폰트 사이즈 조절

이글루스 블로그 컨텐츠

The Egregious Incompetence of Palm

Wednesday, January 31, 2007

윈도모바일과 Palm OS, Linux, Symbian이 현재 스마트폰을 움직이는 운영체제다. 아이폰에 쓰이는 오에스텐과 이들을 비교하면 어떨까? 본 글은 Palm을 한 번 돌아보기로 한다.

Palm의 초기 제품은 애플의 오리지날 매킨토시와 놀라울정도로 같은 전략을 취하였다. Palm에서의 방향 선택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면, 이 회사가 이 방향, 혹은 저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운명이 어떻게 변했을지 흥미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

Palm 제국의 운명이 Palm의 결정으로 어떻게 변하였는지, Palm은 어찌하여 닷컴 시대의 촉망받는 기업에서, 현대 시대의 CP/M이 되어버렸는지를 알아보자. 현재 Palm은 그 시대를 다 떠나 보냈다.

Palm의 정체성과 운영체제는 지난 10년간 여러 주인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변하였다. Palm은 이 회사 저 회사로 인수 합병을 거듭하였고, Palm OS는 여러 독립 업체에게 라이센스 되어왔다.

이와 반대로 WinCE는 안정적인 역사를 유지해온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10년간 시종일관 동일한 방식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
WinCE와 Windows Mobile의 처절한 실패사"에서 이미 다루었다.

Palm's Unfulfilled Potential
Palm은 결코 제공하지 못할 잠재성을 대단히 많이 선전하였다. 최신 Treo에 있는 전화 기능 통합도 너무나 엉성한 상황이다.

Palm OS에 대한 Palm의 무능한 통제력과 하드웨어의 제약, 운 좋은 날만 잘 되는
싱크문제를 그나마 완화시켜주는 논리가 하나 있다. Palm용으로 나오는 써드파티 애플리케이션의 잠재성이다.

이러한 오류는 서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내장된
Flash"와 시스템, 애플리케이션용 RAM의 부족함도 마찬가지다. 메모리 제한폭이 한 번 차면, Palm 기기는 싱크를 거부한다. 그러면 사용자가 손수 암호화된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베이스를 지워 주어야 한다. 안정성은 또 다른 문제이다. OS 개발 문제와 하드웨어 제한이 모두 관련 있다.

여러 모로 Palm OS는 90년대 초반, 애플의 시스템 7과
유사한 운명을 겪어왔다. Palm OS의 문제점은 결국 90년대 후반의 시스템 문제인데, 이는 10년 전에 만들어진 시스템의 문제를 90년대에 겪은 애플과 마찬가지다. 클래식 맥의 황금기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이었다. Palm의 황금기는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이었다.

The Golden Age of Palm: 1996-2002
Palm Pilot 개발의 선구자, 제프 호킨스(Jeff Hawkins)는 초기에 GRiD에서
펜(pen) 컴퓨팅을 개척했었다. 소비자용 PDA 디자인을 시도한 그는 처음에 Casio Zoomer를 만들지만, 이 기기는 대실패를 기록하였다. 뉴튼의 1/10 정도만 팔려나갔다.

Zoomer에 실망한 호킨스는 Palm Computing을 설립하여, 다른 업체의 휴대기기용 써드 파티 소프트웨어를 제작한다. 이 중에는 뉴튼용 글자입력 시스템인 Graffiti도 있었다.

호킨스는 또한 새 PDA 플랫폼 작업도 시작하였다. 저가 시장을 목표로 하여, 소비자에게 실제로 필요한 기능만을 단순하게 집어 넣은 기기였다. Palm Pilot이다.

호킨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갖고 애플의 극도로 세련된 뉴튼에 대항할 회사를 찾아다녔다. 이 때, 모뎀 업체인
US Robotics사에서 Palm을 사겠다고 제의하였다. 액수는 4400만 달러였다.

Palm Pilot은 뉴튼과 마이크로소프트 WinCE 기기 모두를 능가할 정도로 팔려나갔다. 게다가 Palm이 떠오를 때, 애플은 뉴튼을 단종시켰다. 특히 WinCE는 훨씬 간단하고 실용적인 2002년 당시의 Palm OS 기기에 비해 훨씬 경쟁에서 뒤떨어졌다.

다만 Palm Pilot은 최고의 하드웨어와 개발 개념을 시도하지 않고, 저가 하드웨어에 간단한 작업만을 위해 디자인되었다.

결과는 좋았다. 90년대 후반에 특히 그러하였다. 덕분에 Palm에게는 첫 Palm PDA 모델에 있어서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였다.

Palm에게는 행운이었다. 이 시기는 기술 제품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거품 시기였다. Palm에게는 수익과 명성을 올리는 시기였다.

Soul of a New Palm: 1995-1997
새 Pilot PDA를 만들기 위해, Palm Computing은
DragonBall칩을 선택한다. 원래 오리지날 매킨토시와 아미가, Atari ST, Sega Genesis에 들어간 모토로라의 68k 프로세서 임베디드 버전이었다.

Palm의 단순한 OS는
Kadak에서 라이센스받은 멀티태스킹 커널상에서 돌아갔지만, Palm의 라이센스에는 멀티태스킹 기능 구현이 막혀 있었다.

Palm Pilot과 애플 오리지날 매킨토시 디자인이 괜히 닮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몇 가지 유사성을 조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 68k 프로세서에 기반한 고도의 통합된 고유의 하드웨어 디자인
  • 컬러를 허술하게 재현하기보다는 실용적이고 간단한 흑백 디스플레이
  • 화려한 운영체제보다는, 유용성을 향한 집중
  • 쓸 모 없는 잠재성보다는 실용적인 툴을 지향한 디자인

US Robotics는 1 세대 Palm Pilot 10005000을 1996년 3월, 각각 300 달러와 400 달러에 선보였으며, 1 년 뒤, 성능을 개선시킨 Palm Pilot Personal Professional 버전을 선보였다.

두 달 뒤인 1997년 6월, 3Com이 US Robotics를 인수한다. Palm의 창립자들은 Palm 플랫폼이 새 시장으로 진출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3Com은 3세대 Palm인 Palm III(1998년 선보일 예정이었다)에 대해 보다 보수적인 진로를 택하였다.

1년이 못 되어서, 호킨스와
도나 듀빈스키(Donna Dubinsky), 에드 콜리간(Ed Colligan) 등이 Palm에서 나와 Handspring을 창립한다. 미래형 Palm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Newton Supernova: 1997-1998
1997년 이전의 애플 뉴튼 메시지패드는 1993년 이후로 이렇다 할 만한 업데이트가 없었다. 하지만 1997년 3월, 애플은
메시지패드 2000eMate 300(교육용인 작은 뉴튼OS 랩톱이었다)을 선보인다. 예전에 비해 훨씬 빠르고 크게 개선된 모델이었다.

이러한 움직임 때문인지, 애플은 휴대용 기기 시장에 갑자기 민감해졌다. 그동안 한 3년 동안은 뉴튼의 앞날이 불확실했었다.

이 새 모델은 애플이 NeXT를 인수한지 석 달 뒤에 발표되었다. 두 달 뒤, CEO인 길 아멜리오(Gil Amelio)는 뉴튼을 Newton, Inc.라는 독립회사로 분리시킬 것이라 발표하였다.

이로써 1997년 7월 2일에 Newton, Inc.이 태어난다. 하지만 1 주일 뒤, 이사진의 쿠데타로 아멜리오가 쫓겨나고, 애플의 임시 CEO 자리에 스티브 잡스가 오른다. 그리고 9월 19일, 잡스는 뉴튼을 다시 애플과 합병시킨다.

회사 움직임을 다룬 개인 메일에서 잡스는 이렇게 썼다고 얼려져 있다. "Emate의 미래는 밝습니다. 메시지패드도 잘 팔리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뉴튼 그룹을 다시 애플로 불러들여서, 판매와 마케팅 투자를 한 층 강화시킬 겁니다. 주는 것도 없이 분사시켜서 제품 판매를 떨어뜨려선 안 됩니다."

다음 달, 애플은 뉴튼 메시지패드 2100과 함께, G3 파워북과 파워맥으로 매킨토시 라인업을 단순화시킨다. 그리고
온라인 웹스토어가 나타난다.

비록 넥스트 인수 지출비용이 6억 6700만 달러가 포함된 수치였지만, 애플은 1997년 회계년도에 10억 달러의 총손실을 발표한다. 1 년 전, 아멜리오 시절에 입은 손실이 8억 1600만 달러였다.

저렴한 뉴튼인 eMate는 800 달러였고, 메시지패드는 1000 달러가 좀 넘어갔다. 반면, Palm Pilot은 300~400 달러 선이었다. 이런 엄청난 가격 차이, 그리고 Palm의 훨씬 작고 실용적인 주머니 크기 덕분에, Palm은 유명해졌고, 뉴튼이 대중화되리라는 기대감이 무너졌다.

IDC는 1996년에 6만 대의 메시지패드만을 판매했다고 보도한다. 첫 해의 10만 대에 비해 내려간 수치였다. 반면, Palm은 1년 반 만에 100만 대의 PDA를 판매한다. 확실히 Palm은 뜨고 있었다.

한편, 인텔은 DEC의 프로세서 사업부를 인수하였는데, 여기에 메시지패드에서 쓰이는 StrongARM 프로세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텔은 StrongARM 개발에 별 흥미를 나타내지 않았고, 애플이 1998년 2월, 뉴튼 개발을 중지시키자, 뉴튼만을 위해 가동되던 제품 라인업을 단순화시켜버린다.

Hawkins' NeXT - Handspring: 1998-1999
뉴튼의 공식적인 사망일로부터 몇 달 뒤, 3Com을 떠난 Palm 창립자들이
바이저(Visor)라 불리는 새 Palm PDA 작업을 시작한다.

Handspring은 3Com으로부터 Palm OS를 라이센스받아, 기존의 Palm 소프트웨어에 호환성을 갖되 차이점이 있는 기기를 개발한다.

Handspring은 1999년 9월에 새 Visor를 선보인다. 애플이 아이맥을 선보인지 1 년 뒤였다. 아이맥의 성공세를 타기 위해, Handspring은 바이저에 USB 지원과 맥오에스 지원을 포함시켰다. 사실, 초기 Palm Pilot을 맥에 쓰려면, 별도의 USB 연결킷이 필요했다.

바이저는 또한 Springboard 확장 포트를 가졌다. 덕분에 바이저는 카메라나 뮤직플레이어, 심지어 휴대폰도 될 수 있었다.

Palm Cuts Wires, Strings: 1998-1999
Handspring의 기기들이 소비자 시장을 지향하였지만, 3Com의 Palm 개발 목표는 기업시장이었다. Palm을 휴대폰으로 돌리기보다는 전문 사용자들을 위한 인터넷 기기가 그 계획이었다.

무선 Palm VII은
Mobitex를 사용하였다. 첫 번째 블랙베리와 양방향 삐삐가 사용한 무선 데이터네트웍의 1세대가 Mobitex이다. Palm VII은 웹클리핑이라 불리우는 단순화시킨 웹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가격은 너무 비싸진 반면, 속도는 매우 느려진다.

Palm VII과는 별도로, 3Com의 다른 제품은 기본적인 오거나이저로 남아 있었다. 기본 PDA는 1999년 10월에 소개한 Palm V 라인이었고, V 라인은 초박형 본체에, 정말 뛰어난 배터리 수명을 지녔다. 이상하게도 II나 IV, VI같은 짝수형 모델은 나오지 않았다.

IBM도 워크패드(Workpad)라는 브랜드로 여러가지 Palm 모델을 판매하였고, 3Com은 Palm OS를 Symbol Technologies같은 곳에도 판매하였다. Symbol Technologies는 휴대용 바코드 검사기에 Palm OS를 사용하였다. Qualcomm Wireless는 pdQ라 불리우는 휴대폰 통합형 Palm PDA를 선보인다.

Qualcomm은 후에 전화기 하드웨어 사업을 쿄세라와 소니, 노키아, 모토로라에 판매한다. 또한 그들도 Palm OS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라이센스도 맺는다. 미니어쳐 Palm OS 시계인 Fossil이 그 예이다.

Palm Supernova: 2000
뉴튼 사망 2 년 뒤, Palm의 흥분은 걷잡을 수 없도록 커진다. Palm의 판매량은 폭발하고, Palm OS도 휴대용 기기판 윈도처럼 비쳐졌다.

닷컴 거품 시절의 자유로웠던 기술 제품 구입은 이런 기술 장난감에 대한 수요를 걷잡을 수 없게 키워 놓았다. 말인즉슨, 당시 엄청난 수의 초짜 기업들과는 달리, Palm은 실제로 이윤을 올렸다는 이야기이다.

1999년 후반, 3Com은 Palm을 독립 회사로 분리시키리라 하였다. 3Com이 실제로 원한 것은 PDA 시장의 거품이 터지기 전에 시장에서 빠져나가자였다. 3Com 내부자들은 Palm OS가 오래되었고, 그것도 그 기세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거나이저 기능을 가진 휴대폰이 결국은 PDA 시장을 함락시킬 터였다.

Palm의 기업공개(IPO)발표 이후, 3Com의 주가는 400% 상승한다. Palm 기기가 판매 제품의 1/10에 불과한 시기였다. 아래 차트에도 나와있는데, 1999년 2/4 분기 때, 3Com의 Palm 부는 4억 3500만 달러 매출에 2300만 달러의 이윤만을 올렸다. 3Com의 이윤은 그 10 배에 다다르는 30억 달러 매출에 3억 달러였다. 비교해 보면, 당시 애플은 42억 달러 매출에 3억 5300만 달러의 이윤을 올렸다.

시장 상황도 Palm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Palm과 유사한 기기가 우후죽순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3Com은 Palm 지분을 5% 제공할 계획이었다. 이는 주당 15 달러에 3억 3천만 달러 어치였지만, 당시 주가는 훨씬 높은 가격인 38 달러에 형성되어 있었다. 시장은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Palm 주식은 140 달러까지 치솟았다가 95 달러 선에서 정리되었다.
Palm의 기업공개(IPO)로 Palm이 얻은 실제 수익은 8억 7400만 달러였다.

95 달러의 주가로 평가한 Palm의 시가는 540억 달러였다. 훨씬 이윤이 거대한 3Com의 시가가 286억 달러였고, 당시 애플의 시가는 200억 달러였다.

한 달 뒤, Palm의 주가는 IPO 때로 곤두박질친다. 전체 시장도 격변하고 있었으며, PDA 판매량이 특히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The Death of the PDA: 2001-2002
Palm의 유행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WinCE가 돌아가는 휴대용 PC를 만드려고, 10년간 뉴튼을 베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1998년, 돌연한 애플의 PDA 시장 철수 때문에 갈 길을 잃은 상태였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Palm의 성공을 베껴서 Palm PC 리퍼런스 디자인을 제작할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이 제품은 너무나 엉터리여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름을 WinCE PDA로, 2000년에는 PocketPC로 바꾸게 된다.

쉽게 번 돈은 2001년에 그 바닥을 보였다. PDA 시장도 이제는 실용성을 요구하였고, PDA는 그 피해를 바로 받았다. Palm 판매량은 2001년, 500만 대를 기록하였다. 2000년의 550만 대에 비해 10% 하락하였다.

Handspring은 300 달러 짜리 VisorPhone 확장 카트리지를 발매하였다. 여전히 앞서나가는 상황이었다. 이 확장 카트리지는 바이저를 GSM 휴대폰으로 탈바꿈시켜 주었다. Treo의 선구자라 할 수 있겠다.

Handspring 판매량은 오히려 동기간 동안에 20% 늘어난 160만 대를 기록하였다. 2000년의 판매량은 130만 대였다.

2000년, Palm OS의 PDA 시장 점유율은 86%였다. 그런데 그 후, WinCE에 기반한 Pocket PC 기기가 서서히 시장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PDA 시장 자체는 거의 성장하지 않았다.

위 표의 노란색 선이 가트너가 측정한 전세계 PDA 판매량이다. 여기에는 Treo가 빠져 있다. Palm은 2003년, Handspring과 합병하면서 Treo 라인을 받아들이게 된다. 공정하게 하기 위해, 필자가 Treo 라인의 판매량을 파란색 선에 추가시켰다. 하지만 별로 나아보이지는 않는다.

WinCE는 더 많은 범위의 하드웨어 지원을 약속하고, Palm OS보다 더 강력한 프로세싱 파워와 더 많은 메모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Palm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약속을 뒤로도 한참 못지켰다. 하지만 Palm에게는 불행히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무능함을 Palm이 활용하지 못하였다. 스스로가 실수를 워낙에 많이 저지른 탓이다.

Palm Copies Apple: 2002-2003
Palm은 자신이 90년대 초기의 애플과 상당히 닮았다는 점을 발견한다. 한 때 자신의 영광스러운 제국이 슬슬 마이크로소프트 라이센스로 넘어가고 있던 것이다. Palm이 펼쳤던 노력조차 애플과 상당히 유사하다.

Copland: Palm은 Palm OS를 현대적인 기능을 갖춘 새 기반으로 갑자기 바꾸기보다, 1991년과 1997년 사이에 구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갖고 씨름했던 애플과 동일한 전략을 취하였다.

그러나 2001년과 2007년 사이, 완전히 현대화된 Palm OS를 선보이려는 계획은 완성하지 못하였다.

Move to RISC: 그대신, Palm은 2002년, Palm OS를 DragonBall 프로세서에서, 보다 현대적인 ARM Architecture로 이주시킨다. 68k에서 PowerPC로 이주한 애플을 생각나게 한다.

우연히도 ARM의 투자자로서 애플은 1998년 지분을 매각할 때까지 ARM으로도 이윤을 쌓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번 돈이 적어도 7억 9200만 달러는 되며, 이 돈이 뉴튼에 쓰여졌다.

그런데 Palm은 더 빠른 새 프로세서에 오래된 운영체제만 가진 꼴이 되었다. 1994년 PowerPC로의 이주를 단행한 애플과는 달리 Palm 개발자들은 실제로 ARM 기반의 Palm을 완전히 사용할 수가 없었다. 본질적으로 Palm의 하드웨어 이주는 사용자에게 별다른 실질적인 혜택이 없었다.

더 심각하게도, Palm의 이주는 애플의 PowerPC 이주보다 순탄하지도 못 하였다. 새로 나온 Palm OS 5는 더 빠른 프로세서상에서 돌아가고 더 많은 메모리를 허용하였지만, 옛 애플리케이션 다수가 새 운영체제와 호환성을 갖추지 못하였다. 하지만 새 Palm에게 절실한 것이 바로 옛 Palm과의 호환성이었다.

Product Simplification: Palm은 여러가지 판매 모델을 단순화시키기도 하였다. 각종 숫자로 이뤄진 각 모델은 이제 소비자용 브랜드인 Zire와 전문 사용자용 브랜드인 Tungsten으로 나뉘었다.

DIY Hardware Focus: 제일 성공한 클론 업체인
Power Computing을 애플이 결국 인수하여 하드웨어에 다시 집중했던 것처럼, Palm 또한 2003년, Treo 휴대폰의 이익을 얻기 위해 Handspring을 인수한다.

Bring Back a Founder: Palm의 Handspring 인수는 애플의
넥스트인수를 방불케 한다. 영혼을 잃고 혁신 죽이기를 일삼던 기존 경영진에게, 새 제품의 열정적인 비전을 갖춘 창립자를 다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애플과 Palm의 닮은 부분은 여기서도 확인된다. 애플은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를 넥스트로부터 얻고, 넥스트의 기술로 맥오에스텐의 새로운 기반을 닦은 반면, Palm은 연속적으로 효과 없는 시도만을 계속 하였다.

Palm이 계속 애플 전략을 뒤따라가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Psion의
EPOC를 라이센스하여 소프트웨어 기술을 쇄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EPOC가 나중에 Symbian OS로 나타난다.


Palm Follows Pundit's Advice for Apple: 2003-2007
저마다 애플을 고치겠다고 나선 전문가들이 언제 그랬는지 기억 나시는가? 애플은 그들 주장 대부분을 묵살하였다. 현재의 맥 사용자에게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Palm은 전문가들의 충고를 모조리 다 따랐다. 이 때문에 만약 Palm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류의 시나리오가 많이 나오게 되었다. 만약 존 드보락(John Dvorak)이나 폴 써롯(Paul Thurrott), 로브 엔더를(Rob Enderle), 그 외 다른
칼럼니스트들이 애플을 경영했더라면 애플이 어떻게 됐을까? 이들의 서로 상충되는 조언은 한결같았다.

이들은 애플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한다.

  • 다른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핵심 OS를 라이센스한다.
  •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전략을 뒤따른다.
  • IT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직접 경쟁한다.
  •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부를 서로 별개의 회사로 나눈다.
  • Be, Inc.를 인수하여 BeOS를 받아들인다.
  • 리눅스 커널을 채택한다.
  •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윈도를 라이센스한다.

애플은 위의 모든 공짜 조언을 무시하였다. 그런데 Palm은 위 조언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따랐다. 그 결과, Palm은 6 개월이면 구식이 되어버리는 시시한 기기나 만드는 회사가 되었다.

License the OS to other hardware makers. Palm은 초창기 때부터 다른 업체에게 운영체제 라이센스를 하려 했었다. 그런데 Palm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돌아갔는지는 논란이 있다. 애플처럼 Palm도 하드웨어 판매로 실제 수익을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Palm OS에 기반한
소니의 끌리에도 4년 밖에 지속하지 못하였다. 소니는 2004년에 시장에서 철수한다.

다른 업체들의 Palm PDA 제조 능력은 수수한 정도였다. Handspring 외의 휴대폰 업체들도 충격을 주지는 못 하였다. Palm이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는 오로지 Handspring을 인수하여, 팔 만한 제품, Treo를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Copying Microsoft's Windows Strategies 반복할 때마다 근사하게 들린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전략 복제의 문제점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위에 있는 회사가 아니라면 절대로 이 전략으로 승리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심각한 경쟁이 있는 한, 가게 하나에서 통합시킨 제품들을 한 군데에 진열하는 식인 마이크로소프트식 전략을 쓸 수는 없다.

애플은 자신의 힘으로 성공을 이루었다. 게다가 음악영화 다운로드, 뮤직플레이어, 애플리케이션과 통합 하드웨어로 강력한 위치에 올랐다.

애플은 비-마이크로소프트 전략을 구사하여 일종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되었다. 그 결과 현재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식의 통합을 구사할 만한 위치가 되었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애플이 지배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식 전략 따라가기는 불가능했다.

2004년 당시, Palm은 PDA 시장에서 WinCE와 시장점유율 측면에서 호적수였다. 성공 기반을 공짜로 제공해 줄 IBM도 없었고, 베낄 성공도 없었다. PDA 자체를 아무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Compete directly against Microsoft in IT markets. 대 기업 시장 PDA 판매는 Palm에게 잘 먹히지 않았다. PDA의 진정한 성장은 Handspring의 소비자 시장과 휴대폰에서 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WinCE도 기업시장에서 차가운 대접을 받았다. 90년대 초반 PC처럼 PDA에게 어서옵쇼하는 곳이 없었다.

Split into hardware and software companies. 전문가들은 애플이 하드웨어부를 분리시켜서 맥과 윈도 PC를 동시에 판매하고, 운영체제회사를 따로 두어서 애플 맥과 다른 업체의 PC용으로 라이센스 사업을 덜이라는 말을 즐겨 한다. 훌륭한 아이디어같다. 하지만 역시 Palm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2002년, Palm은 Palm OS 개발부를 따로 만들어서 PalmSource로 분리시킨다. 하드웨어는 이듬해 Handspring과 Palm의 합병으로 palmOne이 되었다. Palm 사용자들에게는 혼란스러웠다. palmOne 기기에 PalmSource에서 나오는 운영체제를 받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PalmSource는 Palm 5 Garnet (맥오에스 7의 PowerPC 버전을 생각하시라)의 후계 운영체제를 선보일 예정이었다. 그것이 Palm 6 Cobalt (PowerPC-네이티브 코플랜드를 생각하시라)였다. 그런데 하드웨어 라이센스 업체들이 코발트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코발트는 차후 Palm 기기에서 쓰이게 될 ARM 프로세서 네이티브 지원을 약속하고 있었다. 심지어 palmOne도 PalmSource의 Cobalt OS를 쓰지 않겠다 하였다.

Buy Be, Inc. for its BeOS. 2001년, 제공할 것이 없다는 점을 Be가 증명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Palm은 1996년 애플이 한 때 고려했던 BeOS 구입비로 1100만 달러를 치렀다. 당시 Be에게 있던 유일한 가치는 사업을 무너뜨린다는 명목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할 수 있다는 것 뿐이었다. 결국은 협상 끝에 2300만 달러로 값이 올라갔다.

Palm은 누구도 원치 않던 코발트 운영체제 개발을 위해 Be로부터 얻은 개발 자원을 쏟아 부었다. 스티브 사코만(Steve Sakoman)과 도미닉 쟘파올로(Dominic Giampaolo)와 같은 Be의 인재들은 애플로 가버렸다. 사코만 자신은 원래 애플에서 뉴튼 팀을 시작했던 인물이었다. 쟘파올로는 Be의 풍부한 메타데이터 검색을 제작한 장본인이었지만, 후에 맥오에스텐의 스폿트라이트 기술 설계자로 변모한다.

Adopt the Linux kernel. Be의 남은 부분을 조금씩 낭비하면서, PalmSource는 2004년, China Mobilesoft를 인수하고, Palm OS의 미래 버전을 리눅스 커널상에서 돌리겠노라고 발표한다. Garnet과 코발트에서 쓰인 기존의 Palm 전용 커널도 지속시키면서 말이다.

이듬해, PalmSource는 다시금 계획을 변경한다. Garnet과 코발트 개발은 이제 끝났으며, 모든 개발력을 리눅스로 이주하겠다는 발표였다. 그 후, 일본의 임베디드 개발사인 ACCESS에서 PalmSource를 인수한다.

남게 된 palmOne이 ACCESS로부터 Garnet의 나머지를 라이센스하였고, 다시금 이름을 Palm, Inc.로 바꾸었다.

그동안 ACCESS는 Palm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Palm OS 5를 단순히 가넷(Garnet)이라고만 불렀다. 이 "가넷"은 리눅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현재 ACCESS 리눅스 플랫폼으로 불린다. 실질적으로 Palm과의 관련은 없다.

License Windows from Microsoft. 그동안 다시 Palm으로 바뀐 하드웨어부는 Treo에서 쓰기 위해 윈도모바일을 라이센스하기로 결정내린다.

윈도모바일을 지원하기 위해, Palm은 Treo의 화면 해상도를 320X320에서 240X240으로 줄여야 했다.

WinCE 버전은 멀티태스킹 지원도 하였기 때문에, 애플리케이션 사이를 스위치할 수 있었다. 물론 백그라운드상의 다른 애플리케이션이 프로세서 사이클을 계속 잡아 먹으면서 말이다. 이 때문에 윈도모바일은 똑같은 Palm 버전의 Treo보다 훨씬 느리다는 느낌을 주었다.

Palm의 윈도모바일 라이센스는 Palm OS의 앞날에 의심만을 남겨두었다. 게다가 개발권이 가넷으로 옮겨가기도 하였고, 스스로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의존적인 회사가 되어버렸다. 그로고 기기도 다른 윈도모바일 라이센스 업체와 별 차이가 없어져버렸다.

Inedible Dog Food
Palm OS 소화도 못한 Palm의 무능은 안 좋은 신호였다. 게다가 윈도모바일 지원도 더더욱 안 좋은 신호였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제품에
WinCE 사용을 피할 지경이다.

소니와 다른 라이센스 업체들도 Palm OS를 포기하였다. 소니는 4년 동안 끌리에 PDA에서 Palm OS를 라이센스해왔지만, 바로 그 때 소니는 에릭슨과의 협력으로 현재 휴대폰 대다수를 점유한 Symbian OS로도 작업중이었다. Symbian은 애플의 오에스텐과 비교할 때 어떠할까?

다음 기사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What do you think? I really like to hear from readers. Leave a comment or email me with your ideas.

http://www.roughlydrafted.com/RD/RDM...1512E423F.html
위민복님의 글입니다.


2차 출처 : KMUG

포스트 공유하기

썸네일
후움님의 글 구독하기
덧글 0 관련글(트랙백) 2
신고
맨 위로
앱으로 보기 배너 닫기

공유하기

주소복사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수있습니다.

http://limdream2.egloos.com/m/28106
닫기

팝업

모바일기기에서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운영체제가 안드로이드, ios인
모바일 기기에서 이용해주세요.

덧글 삭제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확인

게시글 신고하기

밸리 운영정책에 맞지 않는 글은 고객센터로
보내주세요.

신고사유


신고사유와 맞지 않을 경우 처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 위반/명예훼손 등은 고객센터를 통해 권리침해
신고해주세요.
고객센터 바로가기